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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연예 스타 리뷰

김성주의 '알 수 없는 인생' 웃으며 울게 만드는 노래

레이몽 2011. 3.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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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3사의 배신자(?) 3인방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MBC 출신의 김성주, KBS 출신의 신영일, SBS 출신의 김범수, 이 세 사람은 모두 전직 아나운서였는데 제 손으로 사표를 던졌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아나운서라면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안정적이고도 폼나는 직업인데 왜 그만두었을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텐데, 그 아까운 것을 모두 버리고 왜 밖으로 뛰쳐 나왔을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결국 '돈의 유혹'이다.

방송국은 다른 직장과 많이 다르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예인들이라는 말이다. 물론 연예인이라고 누구나 잘 나가고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눈길이란 원래 보다 탐스러운 것에 끌리게 마련이 아닌가? 특A급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공중파에서 고정을 1~2개 정도만 맡고 있으면, 웬만큼 잘 나가는 아나운서 월급보다 수입은 훨씬 많을 것이다. 고액의 출연료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행사 등의 부수입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신입 시절을 거쳐서 아나운서로 유명해지고 어느 정도 인기를 얻으면 어깨가 으쓱해질 무렵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봐 주고,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도 누리며,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주는 고상한 느낌 때문에 또 그만큼의 대접까지 해 준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자기보다 별로 인기도 없는 듯한 연예인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우연히 그 액수를 듣게 되자 입이 딱 벌어진다.

"이거야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그 코미디언보다 더 똑똑하고 말도 잘 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 인기도 좋다. 그런데 나는 아나운서라는, 이유 때문에 가끔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빵빵 터뜨리고도 고작 2만원 밖에 챙기지 못한다. 이건 아무래도 부당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입사 전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이 족쇄로 느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족쇄를 벗고 뛰쳐나가면 마음껏 자기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푼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한껏 부푼 풍선처럼 쉽게 터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었다.


아나운서라는 고급스런 타이틀을 벗어던진 그들의 모습은 삽시간에 초라해졌다. 열광하던 대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기만 했다. 신영일은 말했다. "정말 행사가 들어오지 않을 때는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기도 했어요.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까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기도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 않고 그냥 계속 자는 척 하기도 했어요."

김성주와 신영일은 현재 엇비슷한 입장이라 그들을 불러 주는 행사가 겹치는 일이 잦다. 오랫동안 깊은 슬럼프에서 헤매던 김성주는 요즘 다시 회복세로 접어들어, 공중파에서 좀 잘 나가는지라 행사 단가가 높아졌다. 그래서 단가가 맞지 않아 거절한 행사는 거의 다 신영일이 싼값에(?) 뛰고 있다고 한다. 아나운서 시절의 월급에 비해 수입은 좀 많을지 모르지만, 이래 갖고서야 영 폼이 나질 않는다.

직장인으로서의 아나운서가 답답해서 뛰쳐나왔던 김범수는, 팔자가 그런 것인지 결국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회사에 취직하여 직장인이 되었다. 안정적인 면에서도, 대접받는 면에서도 아나운서보다 결코 낫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수입 면에서도 크게 나을 것 같지는 않다. 가슴아프지만 이 정도면 확실한 다운그레이드라고 봐야 할 듯 싶다.


그들은 저마다 노래 한 곡씩을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유명한 노래를 개사하여, 아나운서를 그만 둔 이후에 겪었던 희노애락(?)을 그 가사 안에 담은 노래들이었다. 우선 신영일이 부른 노래는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를 개사해서 만든 '행사 또 오더라'였다. "행사가 취소돼서~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순간 뿐이더라, 섭외 또 오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이미 낸 사표 말하면 뭐해 돌릴 순 없는데~ 괜히 아픈 가슴만 다시 들춰내서 뭐해~) 눈물은 묻어 둬라~ 당분간은 아껴 쓰자~ 죽을 만큼 노력해, 행사는 또 있어, 그 사실에 감사하자~" ...... 참으로 가슴 절절하다. 

김범수가 부른 노래는 만화주제곡 '들장미소녀 캔디'를 개사한 '들장미소년 범수'였다. "대표님께 깨져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다 홧병 도졌어~ 꿈을 안고 달려보자 수익창출~ 꿈을 향해 도전하자 상품개발~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전략팀 김이사~ (중략) 잘되면 성과급~ 안되면 잘린다~ 잘리면 끝이다~ 범수 범수야~" ...... 역시 절절하다.


마지막으로 김성주는 이문세의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을 개사해서 불렀다. 하지만 그 가사 내용은 앞의 두 사람 만큼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예능 경험이 가장 많은지라 예능에 맞춰서 재미있게 만들어 보려 한 것 같은데, '라디오스타'의 4MC에게 대놓고 아부하는 느낌만 들었을 뿐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장에 더욱 잘 맞는 가사는 김성주가 자기 마음대로 바꿔놓기 전의, 그러니까 이문세가 불렀던 원래 노래의 가사였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눈부신 그 시절, 나의 지난날이 그리워요~" 

돈을 더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서, 조직 생활에 몸담았던 직장인들은 조직으로의 회귀 본능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다고 김성주는 말했다. 절반 정도는 진심이고, 절반 정도는 자존심으로 포장된 발언이었을 것이다. 사표 낸 것을 후회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무척이나 많이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눈부신 그 시절, 나의 지난날이 그리워요~" 김성주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신나는 템포의 이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울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고, 뼈저린 후회를 하는 일도 많다. 심지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우리는 아무리 살아봐도 세상을 알 수가 없다.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그냥 '알 수 없는 인생'을 그대로 견디고 즐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쿵짝쿵짝 신나는 멜로디 속에, 이 노래는 인생의 눈물과 웃음을 함께 담고 있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오래도록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김성주의 목소리로 들으니,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더욱 진하게 느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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