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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처음부터 끝까지 김해숙, 그녀만 보인다

레이몽 2010. 4. 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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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가 엄마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떠나는 데서부터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녀의 회상이 이어집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처음에는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달콤한 멜로가 전혀 없었기에 곧 그 환상은 사라졌습니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 촌스러운 엄마가 창피하다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는 딸... 그래도 한없이 모든 것을 다 퍼주려고만 하는 어머니의 사랑... 스토리는 참으로 전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압도적으로 화면을 장악하고, 귀에 착착 감기게 대사를 치는 '어머니' 김해숙이 아니었다면 차마 견디기 힘들 만큼 전형적이었습니다.

공부를 잘 해서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한 딸... 여전히 그녀를 만나러 올라올 때마다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오는 촌스러운 엄마... 그래도 조금만 더 보면 신선한 내용이 나오겠지 하고 인내심을 발휘했으나, 좀처럼 스토리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질려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야무진 결심으로 소녀시절을 보냈던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합니다. 남자쪽 집안에서 반대했지만, 친정엄마의 극진한 사랑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한 결혼이었지요. 별 무리 없이 아이도 낳고... 그 모든 과정에서 '엄마'는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영화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으나, 그렇지도 않더군요. '인간극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친정엄마'의 등장인물들과 스토리는 너무 평범하고 일반적이었거든요. 그것도 70~80년대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되어 갈수록 저는 대략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너무 기대 이하였거든요.

막판에 반전이 있다는 얘기는 미리 들었었지요. 뭔가 중요한 내용이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별로 눈치가 빠르지도 않은 제가 그 반전이라는 것을 영화가 시작된지 3분만에 벌써 짐작을 해버렸으니 그 또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설마 내 생각이 맞을까 싶었는데, 기막히게도 맞더라구요.


그러나 배우 김해숙의 능력은 이 영화에서 최고도로 발휘되었다고 단언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중견배우로서 거의 주인공들의 어머니 역할만 하다보니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단연 그녀가 주인공입니다. 한번쯤은 이런 역할을 맡아서 해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비록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상이지만, 절정에 이르른 그녀의 표현력으로 형상화된 어머니는 결코 식상해보이지 않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루해 하면서 보았으나, 중간에 기어코 제 눈물을 짜내게 만든 장면이 있었습니다. 평생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쓰러져 사망한 후, 딸은 장례식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며 함께 가자고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군인인 아들도 역시 엄마가 혼자 계시면 자기도 마음편히 군 생활을 할 수 없으니 누나와 함께 가시라고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굳이 혼자 시골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하지요. 그러면서 딸에게 말합니다. "이것아, 너 때문이야. 결혼한 여자가 속상할 때 아무데도 갈 곳이 없으면 그게 얼마나 서러운 건데...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속상할 땐 언제든지 엄마한테 와라."


속상할 땐 언제든지 엄마한테 와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책스레 울컥 쏟아지던 눈물은 저 스스로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1분 전까지도 멍한 표정으로 지루하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울다니 말이에요.

그 한 장면 외에는 사실... 너무 대놓고 눈물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에 오히려 눈물은 나지 않았고, '어머니의 사랑' 이라는 소재 자체가 감동적임에도 불구하고, 한치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하고 식상하고 전형적인 스토리 때문에, 현대인들의 마음에 글쎄,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아직 불이 켜지지도 않았는데 우르르 일어서서 눈앞이 보이지도 않는 그 어둠 속을 헤매며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더군요. 감동의 여운이 남았다면 어찌 그랬겠습니까.


웬만하면 시사회 리뷰라서 좋은 말을 쓰려고도 했지만, 솔직히 저의 기준에는 함량 미달이었기 때문에 좋은 평을 쓰지 못해 약간 미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해숙이라는 중견 연기자의 훌륭한 연기를 2시간 내내 만끽할 수는 있었습니다. 가장 어머니다운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아주 평범한 이야기와 오래된 신파의 분위기와 대놓고 흘려대는 최루성 눈물 속에 잠시 빠져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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